<Inherent Vice> 부식된 선박에 내려앉은 희미한 빛 조각
이기상 평론가
마약, 섹스, 자유, 사랑. 60년대 미국에 불어온 카운터 컬처의 이상주의적 열풍이 지나가고 어느새 다가온 1970년. 닉슨 대통령의 보수주의가 기권을 잡고 기업 자본주의가 부상하며 사법 당국은 히피들을 잡기 위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 아메리칸 북새통 속에 남루한 옷차림에, 시커먼 발바닥에, 자욱한 대마초 연기속에 파묻힌 남자가 있다. 해시계가 그보다는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리라.
닥 스포텔로는 로스앤젤레스의 사립탐정이다. 어느 날 밤, 여느때와 같이 하릴없이 소파에 누워 시간만 때우고 있던 그에게 전 애인 샤스타 페이가 찾아온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유명 부동산 거물 미키 울프먼의 불륜녀였으며, 미키의 아내와 그녀의 불륜남이 미키를 정신병원에 가두려는 작당모의를 하고 있다고 밝힌다. 사건을 의뢰한 후 사라진 샤스타는 이후 실종된다.
영화는 토마스 핀천의 원작 소설대로 닥의 수사과정을 매우 길고 흐릿하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복잡하기 이를데 없이 얽히고 섥힌 음모론들은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더구나 주인공이 마약중독 히피인 덕분에 현실과 몽환 사이의 경계가 분명치 않아 플롯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신도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스토리텔러로서 무책임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 영화의 불가해한 난장판은 사실 장르의 정교한 변주이자 인물들의 마음과 시대의 정서를 반영한 영화적 지형(地形)이다.
<인히런트 바이스>는 40년대 필름누아르 영화들을 계승하고 있다. 도발적으로. 필름누아르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하나 꼽자면 물론 <빅히트>나 <말티즈 팔콘>의 험프리 보가트의 냉철한 프로의 얼굴일 것이다. 또는 깊은 명암 대비와 담배연기로 감싸인 코트와 중절모 차림의 오슨 웰즈를 떠올릴 지도 모른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한량 주인공이 전통적 누아르 영웅과 공유하는 점이라고는 그가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자칭’ 사립탐정이라는 점 뿐이다. 그가 하는 일은 수사라기 보다는 단서가 있을만한 곳에 가서 대마초를 피우는 행위에 가깝다. 수첩을 잃어버린다고 해서 걱정할 일도 없다. 그가 적어놓은 정보라곤 ‘이 사람 피해망상인가?’나 ‘스페인어로 뭐라고 말하네’ 정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닥이라는 인물은 전통적 필름누아르 영웅을 70년대 사회상에 억지로 끼워넣었을 때 발생하는 기이하고 해학적인 산물이다. 느리고 꿈꾸는 듯한 태도는 로버트 알트만의 <긴 이별> 속의 필립 말로우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앤더슨의 초기 영화들부터가 알트먼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해 왔음을 미루어 볼때 닥은 필립의 연장선에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는 날카롭고 세련된 누아르 영웅들에게 정말로 공감을 하는가? 그들의 재빠른 두뇌회전과 철저한 프로정신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존경하게 만든다. 그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완벽함은 결국 운명이 그들을 굴복시킬 때에 이르면 충격과 참담함을 배로 증폭시키는 숙명적 비극의 역할을 하지만 이는 상징성을 얻는 대신 삶을 극단적으로 과장시킨다. 허술하기 짝이 없고, 사건과 단서들에 이리저리 치이고, 결국 사고를 당하듯 해결에 봉착하는 스포텔로야 말로 실로 인간적인 삶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닥을 비롯한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해변가의 희뿌연 안개, 거의 모든 실내를 가득 매운 자욱한 대마초 연기, 미궁같은 사건의 수면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수많은 얼굴들. 잔인한 유머와 익살스런 폭력과 복잡한 범죄와 끔찍한 플롯의 뒤죽박죽 난장판 속, 인물들의 마음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상실감과 그리움의 감정이다. 따라서 스포텔로의 수사 과정이 표면적으로는 샤스타와 미키를 찾기 위한 것으로 보이더라도, 그 아래에는 인물의 더욱 깊은 욕망, 즉 왜곡된 기억속에 더 이상 그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과거를 찾기 위한 그의 내적 여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속 이 핵심 정서는 닐 영의 삽입곡 ‘Journey to the Past’로 응축되어 표현된다). 스포텔로의 여정이 샤스타와 공유했던 과거의 인상들을 더듬어가는 과정이라면 다른 인물들 또한 비슷한 그리움을 마음속 깊이 품고 있다. 닥이 미키와 샤스타를 찾기 위한 수사 도중 난항을 겪고 있을 당시, 또 한명의 의뢰인이 그를 찾아온다. 호프라는 이름의 의뢰인은, 모두가 자신의 남편 코이가 살해당했다고 말하지만 자신은 그가 실종된 것이라 믿는다고 말한다. 호프는 코이와 함께 마약에 취해 화장실에서 구토하고 설사하면서 처음 만났던 익살스런 과거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그를 찾아줄 것을 의뢰하지만 아이에 대한 걱정과 남편에 대한 그녀의 그리움은 누구보다 진심이다. 이후 수사중이던 닥은 코이를 만나게 되고 그가 미키와 샤스타가 연류된 위험한 컬트에 발이 묶여있음을 알게된다. 코이는 가족을 그리워하지만 섣불리 컬트를 빠져나갈 수 없어 고뇌한다.
닥이 실종된 샤스타를 찾아가는 플롯은 어찌보면 영화의 내러티브에 대한 의무적 구실에 불과하다. 영화의 ⅔ 지점에서 닥은 미키를 찾아내고 샤스타는 집으로 돌아온다. 맥거핀을 걷어낸 이후 영화는 진짜 주제로 수렴하는데, 즉 호프와 코이의 플롯에 정착하는 것이다. 결국 닥은 천만의 위험을 무릎쓰고 컬트에서 코이를 빼내는데 성공한다. 현관에서 부둥켜 안는 호프와 코이의 모습을 뒤로하고 닥은 누아르의 영웅답게 쓸쓸히 집으로 향한다. 대마초 좀 더 피우러.
닥과 샤스타, 코이와 호프 말고도 이상하게 복잡한 감정이 드는 인물이 있다. 강력계 형사 빅풋이다. 빅풋은 거칠고 마초적이며 영화에서 가장 일차원적인 감정을 가진 인물인 것 처럼 묘사된다. 공화당 열렬 지지자일 듯한 빅풋과 무정부주의자 히피인 닥은 시종일관 티격태격하며 서로를 이용해먹기나 하려는 사이이고, 따라서 빅풋은 관객에게 단순하고 폭력적인 인물로 낙인찍히기 제격이다. 그러나 그 또한 커다란 상실감에 사로잡힌 한명의 인간이다. 그는 과거에 파트너를 잃었고,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그리움과 분노를 항상 억누르고 있는 듯하다. 밖에서 보이는 골목대장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는 오랫동안 심리상담을 받아왔고, 집에서는 와이프에게 구박당하는게 일상이다. 닥은 샤스타와의 과거를 그리워하며 몽롱한 정신으로 미궁을 헤매고, 호프는 코이를 기다리며 희망을 지켜낸다면, 빅풋은 죽은 동료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그 심연같은 애수를 분노로 감추려 하는 셈이다.
영화의 엔딩은 상실감과 그리움이라는 테마에 대한 입체적인 고찰을 제시한다. 호프와 코이의 희망적인 해결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의 엔딩을 연상시키며 인간의 구원에 대한 그의 옅은 미소가 여전히 존재함을 암시한다. 반대로 빅풋의 상실감은 영원한 미결이다. 그는 죽은 파트너와 재회할 수 없으며, 도움의 손을 내미는 닥 또한 거부한다. 닥의 대마초 잿떨이를 통째로 삼켜버리고 문을 박차고 나가는 그는, 어쩌면 잿더미가 되어버린 죽은 파트너를 자기 몸 안에 넣어서라도 간직하고 싶다는 욕구를 자기도 모르게 표출한 것은 아닐까. 반면 닥과 샤스타는 해결도 미결도 아닌 수수께끼가 되어버린다. 마지막 쇼트는 달리는 차안에서 서로에게 몸을 기댄 그들을 보여준다. 둘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예전의 마음을 느낄 수 없다. 그것은 이미 과거의 것이고, 지나온 것들은 철저히 그곳에 머물기 때문이다. 희뿌연 차창 너머로 선명히 새어들어와 닥의 얼굴을 비춘 빛조각은 무엇이었을까? 닥이 백미러로 응시하며 이내 웃음지은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개인의 마음의 연장선에는 보편적인 시대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물들의 복합적인 감정은 ‘지나간 시대’에의 노스탤지아와 ‘도래하고 있는 시대’에 대한 사회적 혼란스러움을 반영한다. 내레이션에서 언급되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inherent vice’라는 용어는 직역하면 ‘본래적 결함’이라는 뜻이다. 이는 어떤 물건이나 재료에 내재된 숨겨진 결함이나 자연적 단점이라는 뜻으로, 어떤 것이든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쉽게 변질되거나 손상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영화의 제목으로서 ‘본래적 결함’은 영화의 주제—결함으로 가득한 인간성, 쇠퇴하는 반문화, 그리고 급변하는 시대속 피할 수 없는 혼란—를 상징적으로 압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인간과, 그의 마음과, 그의 관계들은 시간이라는 바다에서 본래부터 부식될 수 밖에 없도록 설계된 것일지 모른다는 씁쓸하면서도 따뜻한 위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