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Spider> 시스템의 숭고한 거미줄
이기상 평론가
영화의 첫 10분은 날 것 그대로의 성노동 현장을 묘사하는 다큐멘터리처럼 묘사된다. 한 성노동 여성을 주인공인듯 따라가다가 그녀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의 운을 띄운다. 히치콕의 Psycho (1960) 가 연상되는 이 영화의 도입부는 더욱 뻔뻔스럽게 살인마의 얼굴까지 보여준다. 소설에 빗대자면 알리 아바시 감독은 ‘이 이야기는 범인 찾기 스릴러가 아닙니다. 범인은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이 사람이고 이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책을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란 마슈하드에서 ‘스파이더 살인마’ 로서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Saeed Hanaei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여느 평범한 시민으로 묘사된다. 한편 저널리스트 Areezo Rahimi는 스파이더 살인마 연쇄 살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마슈하드에 도착한다. Saeed는 신앙심 깊고 가정적인 인물로 묘사되며 마치 영화가 그의 살인 동기가 무엇인지에 다가가는 캐릭터 스터디의 태도를 취할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영화는 중반부까지 Saeed와 Areezo를 교차해가며 각 인물의 고군분투를 보여주나 Saeed의 범죄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질문만 던질 뿐 이렇다 할 만한 답은 내놓지 않는다. 관객이 알게되는 정보라고는 Saeed가 이라크전 참전용사였고 그가 전쟁에서 순교자가 되지 못하고 살아 돌아왔다는 것에 대해서 ‘신에게 쓸모있게 이용되지 못했다’ 라는 죄책감을 안고 있는 듯 보인다는 것 등이다. Saeed는 자신의 살인이 신을 위해 거리를 정화시키는 순교자적 행위임을 강조하면서도 피해자들의 시체에 성적 집착을 보이는 등 자신의 모순적 욕구들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인듯 묘사된다. 그에게 창녀들을 살해하는 것은 신에게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한 종교적 의식 또는 하나의 성스러운 전쟁인 것일까? 그에게 종교는 내면의 변태 성욕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한 것일까? 한 사람의 내면에 숭고함과 저열함이 동일한 농도의 진실함으로 공존한 수 있는 것일까?
Holy Spider는 관객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고, 그것이 범인찾기나 플롯 예상하기 등의 질문이 아니라 범죄자의 의도와 더 나아가서는 개인의 범죄와 그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질문이라는 점에서 여느 범죄 스릴러물과는 지향점을 달리한다. 특히 살인마와 사회의 관계라는 테마는 영화의 중간지점부터 가장 묵직한 질문으로 떠오른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를 줄곧 지켜보았음에도 그가 그의 주변으로부터 그닥 동떨어진 것 같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은 우연일까? 예컨대 Areezo를 희롱하는 경찰의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매춘부 연쇄살인마가 마음 놓고 학살을 저지르는 것은 그닥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
영화는 중반부를 지나며 일종의 법정영화의 형태를 띄게 되는데, 연쇄살인마의 농담에 군중들이 폭소를 터뜨리는가 하면,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영화의 고찰 대상은 Saeed에서 시스템이라는 더욱 거대한 ‘홀리 스파이더’가 된다. 경찰, 법, 피해자, 살인마, 심지어 아이 조차도 부패한 사회의 끝없는 거미줄 속에서 크고 작은 파동을 일으키며 서로 끈끈이 맞물린 운명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종교와 사회 제도에 대한 의문을 중심으로 빚어진 Holy Spider는 알리 아바시의 전작 Border (2018), The Apprentice (2024) 와 같이 일반 관객이 ‘들여다보기 힘든 대상’을 파헤치는 심층 캐릭터 스터디의 방식으로 그 의문을 영화적 질문으로 구체화시키는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