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pprentice> 성공 신화 전기 영화에서 살인마 탐구 다큐로

이기상 평론가

거물 사업가, 리얼리티 쇼 스타, 두 번 미국 대통령 역임에 2024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 선정까지. 그에 대한 견해가 어찌됐든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도널드 트럼프가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전 세계 뉴스가 그를 주목하고, 오래 전 이미 그의 자서전도 출판되었으며 이제는 그의 전기 영화마저 개봉했다. 그것도 아주 의외의 이란 작가주의 감독 알리 아바시가 감독을 맡은 영화이다. 드디어 트럼프는 예술영화 감독마저 주목하는 인물이 된 것일까?  


다른 캐릭터 스터디 영화들과 어떻게 다른가?

The Apprentice는 피카레스크 장르의 캐릭터 스터디 영화이면서도 주인공 자신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르의 전형적인 후반부와 궤를 달리한다. 악인 주인공은 끝까지 승승장구하고 오히려 주변 인물들만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는 이후 영화의 주제의식에 대한 논의에서 더욱 깊이 있게 다뤄질 것이다. 또, The Apprentice는 전통적 성공신화 캐릭터 스터디 영화의 흐름을 따르는 듯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살인마에 탐구에 대한 영화이다.


개인적인 욕망과 대의명분 사이의 괴리’ 라는 테마.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마..’ ‘미국이 가장 중요한 의뢰인이니까요?’ 알리 아바시의 신작은 버디무비이자 뒤틀린 성장 영화, 그리고 로맨스 영화이기도 하다. 극중 극악무도한 변호사 로이와 젊은 사업가 도널드는 ‘미국’ 이라는 껍데기 뿐인 대의명분을 내세운 채 개인적 욕망을 마음껏 충족시킨다. 로이가 도널드를 간택하고 이끌어주는 동기는 정확히 나타나지 않지만 영화는 로이의 호모섹슈얼리티를 유력한 이유로 제시한다. 예로, 유명인사들이 모인 난교파티 장면에서 도널드는 뜻하지 않게 로이의 동성 정사를 보게 되고 놀라서 집을 뛰쳐나간다. 파티의 난장 속에서 음흉한 가면을 쓴 남자가 도망가는 도널드에게 달라붙고, 도널드는 그를 뿌리치는 과정에서 그를 넘어뜨린다. 이후 카메라는 도망치는 도널드를 따라가는 대신 쓰러진 남자의 음흉한 가면에 클로즈업을 한다. 이 연출의 동기는 무엇일까? 이는 로이의 도널드에 대한 억압된 성욕과 그들 사이 관계의 암묵적인 저류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시퀀스이다. 이후에도 변호사와 유사 아버지 역할을 자처하며 도널드를 따라다니는 로이는 도널드와 이바나의 결혼에 훼방을 놓는 등 공적인 명분 배후의 사심을 드러낸다. 결혼 전 재산 분할 문제로 로이, 도널드, 이바나가 삼자대면을 하게 되는 장면은 부자들의 돈에 대한 집착을 부조리한 유머로 풀어낼 뿐 아니라 개인적 욕망과 대의명분 사이의 괴리라는 영화의 핵심적인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의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부와 권력을 키우는 것이 도널드의 욕망이라면 도널드의 안전이라는 구실로 그의 곁에서 성적 만족감을 채우는 것이 로이의 은밀한 동기인 것이다. 

극중 인물들의 위선에 대한 영화의 조소어린 시선은 장면 배열로도 표현되는데, ‘미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해야한다’ 는 로이의 선언과 도널드의 깨달은 듯한 표정, 두 남자 사이의 웅장한 장면 직후 영화는 도널드가 이바나에게 꽃다발을 보내어 집착의 정수를 보여주는 애정공세 장면으로 넘어간다. 지하실에서 마치 독립투쟁을 준비하는 듯한 로이와 도널드의 의기투합 장면과 찌질한 애정공세 장면의 병렬은 미국이라는 대의명분이 얼마나 껍데기 뿐인 만트라인지, 거대한 만트라를 외치는 인물들의 실제 관심사는 어디에 있는지를 유머러스한 대조를 통해 드러낸다. 


대의 명분 배후의 개인적 욕망은 어떻게 ‘살인’ 이라는 테마와 연결되는가? 

도널드와 이바나의 결혼 장면을 분기점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후반부는 도널드가 주위 사람들을 차례로 배신하며 일반적 도덕의 범주로부터 점차 단절되가는 과정을 그린다. 도널드의 첫 희생양은 다름아닌 그의 스승 로이인데, 거침없고 강력하던 그는 도널드의 결혼식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쇠약해진다. 실제로 로이 콘은 1984년 에이즈 판정을 받고 2년 후 사망했지만 영화는 그의 건강 쇠퇴를 도널드의 외면이라는 원인과도 결부시킨다. 결혼 이후 사업 팽창과 사생활로 인해 바빠지는 도널드는 로이를 점차 잊어가고 그의 조언들을 무시하다가 그가 에이즈 판정을 받은 이후 마침내 그를 배신하기에 이른다. 이후 도널드는 죽음을 앞둔 로이를 저택으로 초청해 생일파티를 열어주는데, ‘트럼프’ 이름을 새긴 가짜 티파니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고 뻔뻔스럽게 연설하는 도널드를 바라보는 로이는 자신이 낳은 괴물에 의해 잡아먹히는 꼴이 된다. 자신이 권력과 성욕에 눈이 멀어 키운 도널드라는 괴물에게로부터 결국 돌아오게 되는 것은 가짜 보석, 배신, 그리고 성조기 케이크 쯤인 것이다. 따라서 로이 콘의 죽음은 그의 뒤틀린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미국의 보답이자 도널드의 첫 번째 ‘살인’ 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널드의 두 번째 피해자는 그의 친형 프레디 트럼프이다. 트럼프가의 장남인 프레디는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멸시받는 존재로 그려진다. 도널드는 그런 자신의 형을 포용하는 듯 하지만 이 또한 이바나와의 결혼식을 기점으로 달라진다. 부와 권력, 여자를 모두 쥔 도널드에게 형은 그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실패자로밖에 보이지 않고, 자신의 결혼식에서 술에 취한 형에게 분노해 그를 협박하는 장면에서 도널드는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마저 짓밟으며 폭주할 준비가 완료된 괴물로의 변모를 완료한다. 이후 도널드는 알코올 중독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프레디를 외면하고, 결국 프레디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바나 또한 도널드의 폭주에서 피해를 면치 못하는데, 결혼 이후 그들의 관계는 방송을 위한 껍데기 뿐인 연극이 되고 이바나에게 흥미를 잃은 도널드는 그녀를 가스라이팅하고 괴롭히며 급기야 그녀를 강간하기에 이른다. 이바나의 심리적 죽음 이후에도 도널드의 폭주는 멈추지 않는다. 이후 사업자본이 필요해져 저당잡을 자산이 필요해진 그는 노쇠한 부모님을 찾아가 그들에게 사기를 친다. 어머니의 분별력으로 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분노한 도널드는 죽은 형마저 들먹이며 부모님에게 또한 심리적 죽음을 안긴다. 따라서 영화 후반부에 로이의 장례식과 도널드의 지방 절개 수술이 크로스커팅으로 보여질 때 관객은 어느새 너무나도 낯설어진, 인간과 괴물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주인공의 모습에서 깊게 드리운 살인마의 그림자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살인마’로 변모한 도널드를 그리는 영화의 연출의 예로 ‘로이의 생일파티’ 시퀀스를 들 수 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욕망의 말로, 자본주의의 폐해 등 영화 속 주제의식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동시에 영화가 쌓아왔던 부조리 코미디에 방점을 찍는 장면이다. 장면은 촛불 조명과 와이드 샷으로 촬영되어 큐브릭 영화 속 기괴하고 몽환적인 질감을 연상시킨다. 또, 영화는 도널드가 더 큰 괴물로 ‘성장’ 할 때마다 Clockwork Orange (1971) 의 불길한 일렉트로닉 (무그) 음악이 연상되는 라이트모티를 삽입해 왔는데, 로이의 생일파티 장면에서 역시 이러한 라이트모티프가 울려퍼지며 악몽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알리 아바시는 2016년 Shelley로 장편영화 데뷔 이후, 정체성이라는 테마를 다룬 판타지 드라마 장르의 Border(2018) 와 이란의 연쇄살인마 사이드 하네이를 소재로 한 실화 범죄 스릴러 Holy Spider(2022) 를 통해 세계가 주목하는 신인 감독으로 떠올랐다. 소수자 문제에 대한 사회 비판적 시선을 견지해 왔던 아바시가 신작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전기영화를 선택한 것은 놀라운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의 측근이자 후원자인 댄 스나이더는 영화의 시놉시스만 듣고 트럼프에 우호적인 영화인 줄 알고 제작비를 투자했다가 완성된 영화를 보고 분노해 제작사 중 하나인 키네마틱스와 소송을 벌였다 (#2). 또한 칸 영화제 프리미어 이후 영화는 미국에서 개봉하지 못하게 될 뻔 했는데, 이는 대선을 한 달 앞두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것을 우려한 미국 배급사들이 모두 연루되기를 꺼려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트럼프는 개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감독과 작가를 비난하며 소송하겠다며 협박했고 (#3),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미국 배급사를 얻어낸 영화는 이내 관객을 찾지 못하고 박스오피스에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논란, 소송, 그리고 흥행 실패를 맞이한 감독은 왜 그토록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까? The Apprentice 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이며, 흥행 성적과는 별개로 한 명의 작가주의 감독으로서 그가 이 영화를 통해 이루어낸 성취는 어떤 것이 있을까? 



풍부해진 유머

전작들과의 차이점 중 하나는 풍부해진 유머이다. 전작들에서 아바시가 진중하고 묵직한 스타일을 고수해 왔다면 그의 신작은 이전의 화법으로부터 정반대에 놓인듯한 펑크하고 유머러스한 질감을 갖고 있다. 영화 속 유머는 상당부분 로이와 도널드의 대사나 행동에서 드러나지만, 아바시와 촬영감독 카스페르 툭센이 치밀하게 디자인한 촬영 또한 영화의 전체적 유머의 톤을 구축하고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는‘TV 3/2 포맷, 16mm, 아날로그 비디오’ 로 촬영하고 인물을 정중앙에 프레이밍하는 등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70년대 TV 연출을 모방하여 (#1) 촬영되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도널드의 상승을 다루고 있는 영화의 초반부는 16mm 필름으로 고급스러운 아날로그 느낌으로 촬영되었고 주인공의 인격적 하강을 다루는 후반부는 ‘싸구려 비디오’ 로 촬영되었다는 것이다. 감독이 직접 밝혔 듯 이러한 ‘의도적으로 쓰레기같은’ 연출은 (#4) 다루고 있는 흥망성쇠의 플롯에 대응하는 형식적 선택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엉성한 이 스타일은 당시의 시트콤이나 부동산 광고같은 질감을 빚어내며 영화 전체에 익살스런 톤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감독과 작가는 이 작품에서 왜 유머가 필요하다고 느꼈을까? 

영화 초반 도널드는 아버지 사업의 부사장을 자처하며 갑부들만 드나드는 사교클럽에 드나든다. 실존 인물로서의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악명높은 이미지, 그의 거대한 권력을 이미 알고 있을 관객들은 주인공에게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거나 공감하지 못 할수도 있다. 로이와 도널드가 관객이 다가가기 어려운 인물인 만큼 그들에게는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약점이나 그들을 사로잡을 만한 매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영화 초반 젊은 도널드는 야망으로 가득차 있으나 현실은 아파트 세입자들에게 홀대당하며 수금 일을 하는 ‘웃픈’ 현실의 청년으로 묘사된다. 이에 관객은 도널드에게 연민과 공감을 느낄 수 있고, 덜 긴장한 채 인물에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로이는 처음부터 강렬한 카리스마와 날카로운 유머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실존인물로서 악명을 떨친 로이 콘을 알고있는 관객이라도 그가 꽤나 흥미로운 대상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예로 검사를 협박해 승리를 갈취한 로이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도널드에게 조언을 해주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진리는 없고 현실은 이론과 다르다’ 던지 ‘현실에서는 정직하게 승부를 보지 말고 상대방을 공격해야 승리할 수 있어’ 라는 로이의 염세적인 철학은 매일 현실 속 부조리를 마주하는 관객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창작자로서는 운 좋게도 실제 로이 콘과 도널드 트럼프는 날카로운 언변과 유머를 지닌 인물들이기 때문에 대사를 구축할 때도 그들의 실제 성격에 충실하면서 작품에 풍부한 유머를 주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포스러운 인물들과 사회상을 다루는 작품인 만큼 영화의 유머는 초반에는 관객들의 긴장을 풀어주지만, 후반부에는 어느 새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워진 영화의 주제의식과 지속되는 농담조 사이의 괴리에서 소름끼치는 역설을 발견하도록 한다. 


지속되고 확장된 주제 의식

겉보기에 아바시의 전작 Holy Spider(2022) 와 The Apprentice(2024)는 전혀 다른 영화처럼 보인다. 하나는 이란의 연쇄살인마에 대한 범죄 스릴러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억만장자에 대한 전기 영화이다. 그러나 둘은 두 가지의 중요한 테마를 공유하고 있는 유사한 영화이다. 첫 째로, 두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살인마’이다. Holy Spider 속 주인공은 이란 모슈하드에서 최소한 16명의 매춘부를 살해한 연쇄살인마 사이드 하네이이다. 영화는 사이드의 범죄행각은 물론 그의 가정생활과 은밀한 성적 취향까지 집요하게 취재하듯 진행된다. The Apprentice가 도널드를 묘사하는 방식과 닮아있지 않은가? 영화에서 ‘킬러’ 라는 만트라가 계속 반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도널드의 아버지는 어릴적부터 그를 ‘킬러’로 키웠다고 자부하고 이바나에게 구애하는 장면에서도 도널드는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어. 킬러들과 루저들.’ 이라고 말한다. 물론 극중 인물들은 ‘죽여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킬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한 발짝 물러선 관객에게 도널드는 사이드와 배경과 수단만 다를 뿐 같은 살인마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도널드와 사이드 모두 파렴치한 범죄를 감행하면서도 본인만의 굳건한 소신에 따라 움직이는 아이러니한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사이드는 자신의 범행이 신을 위해 거리를 청소하는 거룩한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도널드 또한 세상을 승리자들과 패배자들이라는 이분법적인 렌즈로 바라보고 본인은 무조건적인 승리자라는 믿음을 가지고 행동한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로이와 사이드의 공통점이다. 로이와 사이드는 각각 민주주의 수호와 종교적 투쟁 등의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결핍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로이는 애국자나 도널드의 법적 대리인등 온갖 명분 뒤에 숨어 도널드 곁을 맴돌며 본인의 호모섹슈얼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사이드의 경우 그의 신앙의 진정성이 모호하게 다뤄지지만 부인과 성관계 도중 자신이 죽인 매춘부의 시신을 응시하는 등의 행동을 통해 그의 범행 동기에 성적 욕망 또한 자리잡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로이와 사이드 둘 다 아버지라는 역할을 공유한다는 것도 흥미로운 공통점이다. Holy Spider에서 사이드는 아들에게 자신의 범행 수법을 그대로 가르쳐주고, 나중에 아들은 아버지의 범행 수법 그대로를 여동생과 장난식으로 재현한다. 이는 로이가 아버지상의 인물로서 도널드에게 ‘승리의 3 법칙’ 을 가르쳐주고 도널드가 그 수법을 습득해 괴물이 되어가는 양상과 닮아있다. Holy Spider가 부자 관계를 통해 괴물의 재탄생 또는 죄악의 되물림을 암시했다면 The Apprentice는 전작의 암시로부터 출발하여 그것의 실현 과정과 결국 아버지를 뛰어넘은 괴물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다. 









인용

#1

https://www.afcinema.com/Kasper-Tuxen-DFF-explains-the-technical-choices-for-The-Apprentice-by-Ali-Abbasi.html?lang=fr

#2

https://variety.com/2024/film/news/donald-trump-movie-the-apprentice-dan-snyder-feud-1236010060/

#3

https://theankler.com/p/donald-trump-threatened-sue-apprentice-sebastian-stan-jeremy-strong-gabriel-sherman

#4

https://www.youtube.com/watch?v=WTpAJR5Oixk&t=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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