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About Eve> 수줍은 표정 너머로 씰룩이는 광기
이기상 평론가
1950년 어떤 세대 교체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길래 , <선셋대로>와 <이브에 대한 모든 것> 같은 작품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 것인가? 두 영화 모두 저물어가는 세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의 광기와 집착을 다루고 있다. <선셋 대로>의 노마 데스몬드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다시 클로즈업을 찍을 준비가 된’ 잊혀진 배우가 얼마나 처절한 말로를 갖게 될 수 있는지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노마의 광기는 폭주하고, 그 격렬함으로 우리를 압도했지만 그 적나라함 덕분에 천천히 스며드는 위험한 살포제를 먹은듯한 뒷맛은 없었다. 한편 <이브에 대한 모든 것> 속 이브 해링턴은 뉘앙스의 귀재이다. 그 심연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야망, 수줍은 듯한 표정 너머로 씰룩거리는 광기…노마는 이브를 만나지 못한 것을 다행인 줄 알아야 한다.
유명한 연극배우 마고를 찾아온 ‘가여운 소녀’ 이브는 자신의 불행한 과거사로 마고를 녹이고, 거장급의 사회생활로 마고를 굳힌 후, 치밀한 배신으로 그녀를 깨뜨린다. 마고의 비서이자 친구를 자처하며 그녀의 최측근으로 자리잡은 이브는 가까이서 마고를 ‘연구하듯 관찰하며’ 그녀를 대신해 새로운 스타배우가 될 야망을 키운다. 이브의 계략 속에서 마고는 나이에 대한 콤플렉스와 이브에 대한 질투 때문에 점점 시들어간다. 결국 마고를 밀어내고 떠오르는 신인배우로 자리매김한 이브는 자신을 줄곧 도와주었던 마고의 친구 캐런의 남편 (그는 유명한 연극 작가다) 마저 빼앗으려 한다. 그러나 그동안 자신의 동업자이자 무기로 활용해왔던 비평가 애디슨에게 배신당하며 캐런의 남편을 뺏으려는 이브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이브는 애디슨의 손아귀에 붙잡힌 채 ‘신세대 스타 여배우’의 대외적 역할에 충실한다.
작품은 어느 순간에라도 여느 치정극이나 로맨틱 코미디물로 변모할 수 있는 유혹을 뚫고 인물 탐구 영화로서의 본분을 지켜나간다. 마고와 이브 사이 힘의 역학의 변화를 섬세하게 다루는 이 드라마는 힘의 순환이라는 원형적인 테마를 제시한다. 마고 또한 이브와 비슷한 방법으로 정상에 올랐을 것이고, 이제는 또 한번의 이브(하와)와 그녀의 파트너 애디슨(아담)의 출현을 위해 추방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추방된 자는, 운이 좋다면, 구원을 찾는다. 여기에 노마와 마고의 차이가 있다. 노마는 끝내 붕괴된 내면의 먹이가 되어 파멸하는 한편 마고는 자기 통찰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내적 융합을 이루어낸다. 영원할 수 없는 젊음과 영화에 대한 ‘갈망’을 내려놓고 참된 자신을 찾아가는 ‘필요’에 응할 때 마고는 비로소 성장한다. 마고가 저물고 이브가 떠오른다는 점에서, 노마의 일몰에서 마고의 일출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이브에 대한 모든 것> 은 ‘선셋’을 넘어서 ‘선라이즈’까지를 다룬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