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ra> 신데렐라는 소리지르지 않는다

이기상 평론가

수많은 왕자님들이 하녀들에게 손을 내밀어왔고, 계단을 오르며 사랑을 키우는 이야기는 무한히 되풀이되었다. 구전 동화 신데렐라부터 거의 모든 로맨틱 코미디가 앞뒤 양옆으로 남김없이 흝어먹은 그 이야기를 왜 2024년에 와서까지 들어야 한단 말인가.


심지어 <아노라>의 줄거리는 신데렐라와 거의 동일하다. 하녀 (스트리퍼)가 왕자 (부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신데렐라에게 걸리는 마법은 아노라에게 쥐어지는 현금이고, 하녀의 유리구두는 스트리퍼의 결혼반지다. 두 인물의 꿈 또한 모두 부서진다. 동화에서 마법이 풀릴 때, 영화에선 왕자가 사라진다. 신데렐라는 다시 하녀 신세로 전락하고, 아노라는 부랑자의 운명을 맞는다. 


 낯 두꺼운 표절 아닌가. 그렇게 영화의 절반까지 먼지쌓인 책장의 퀴퀴한 냄새가 스크린으로부터 배어나오는 듯 하다. 그런데 후반부에 접어들며 <아노라>는 이상하게 변형되기 시작한다. 왕자는 하녀를 찾으러 돌아오지 않는다. 왕자와 하녀는 웨딩카펫을 걷는 대신 이혼서류를 작성한다. 유리구두 (결혼 반지)를 들고 하녀를 찾아오는 것은, 러시아 깡패다. 신데렐라는 왕자의 궁전에서 미소짓고, 아노라는 깡패의 차안에서 울부짖는다.

  지겹도록 반복된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있다. 그 오랜 역사가 증명하듯이 신데렐라 이야기는 분명 보편적이지만, 그 보편성은 환상의 것이다. 모두의 위안을 위한 이야기인 것이다. 마법같이 나타난 구원자에게 이끌려 사랑과 신분상승을 동시에 이루는 이야기. 누구에게나 꿈만 같은 일일 것이다. 신데렐라를 찾아낸 왕자가 그녀의 발에 유리구두를 신기고 그녀와 결혼을 약속할 때, 독자는 환상의 충족을 맛보고 전율을 느끼며 책을 덮는다. 그렇게 그는 현실의 자리에 환상을 끼워넣고 만족스럽게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노라>의 관객에게는 없는 특권이다. 신데렐라만큼이나 아노라의 이야기는 보편적이지만, 그 보편성은 현실의 것이다. 마차와 유리구두, 왕자님과의 결혼 따위로 상징되는 아편은 여기에 없다. 꽁꽁 얼어붙은 차안의 마음씨 따뜻한 러시아 깡패정도로 현실을 체험하는 아노라에게서, 우리는 솔직한 위안을 얻는다. 비록 동화책을 덮을때의 배부름은 없을지라도, 암전된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에겐 현실을 직시할 용기라는 더욱 값진 선물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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